편안한 하루 2006. 12. 29. 09:20

마법의 이발소

늦은 오후, 어슬렁 거리며 이발소를 향했다. 동네에 하나 밖에 없는 이발소다. 언젠가부터 남자들도 미용실에 다니면서 이발소 찾기가 쉽지 않다. 가끔 미용실도 가보지만 여전히 쑥스럽고, 초보들이 깎으면 나처럼 머리 숱이 적은 사람의 옆머리를 허옇게 만들어 놓곤해서 별로 잘 이용하질 않는다. 촌스럽긴 해도 이발소가 차라리 편하다. 이발소엔 오늘따라 사람이 많았다. 기다리기가 싫었다. 이발하는 것 자체도 싫은데 멍청히 앉아 남들 뒤통수나 바라보며 기다리는 건 내겐 견디기 힘든 일이다. '산보나하자.' 아파트 단지 외곽을 돌다 길 건너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평소에 가지도 않던 곳인데 그냥 그리로 향해졌다. 천천히 걸어가는데 아파트 단지안에 조그만 상가 건물이 보이고 이발소의 빨강 파랑 돌아가는 등이 매달려 있었다. 건물은 상당히 낡고 가게 몇개가 고작인 상가였다. 상가로 들어서니 상당히 시골 스러웠다. 세탁소 , 문방구, 미술학원, 조그만 태권도장에선 초등학교 저학년 애들이 쌍절곤 연습을하고 있었다. 어! 없네. 두리번 거리며 상가를 도는데 지하 반찬가게 구석에 이발소가 보였다. 방아간이나 있어야할 자리같았다. 머뭇거리며 알루미늄 샤시로된 미닫이 문을 열었다. 옆으로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니 문을 열고 잠깐 멈칫했던것 같다. 이발소엔 손님은 아무도 없고 한 할아버지 한 분이 일어서며 인사를 건낸다. 그리고 벽에 걸린 흰 가운을 걸치신다. 아! 나갈수있는 타이밍을 놓쳤다. 의자 두 개,낡은 소파, 탁자위에 어지러이 놓인 신문, 구석엔 달았다 떼어 놓은 간판이 보였다..

"이리-- 앉으시죠" "네? 네--" 에이 모르겠다.

"머리가 많이 빠지셨네요"

'손님의 약점부터 말하다니'

"이렇게 깎으면 안되는데"

'할아버지나 잘하세요'

"요즘은 제대로 된 이발사가 없어요. TV 나오는 사람들 머리 그게 뭐예요"

'으---! 어떻게 만들어 놓으려고 이러시나'

이렇게 이발사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머리 숱 적은 사람은 깎는 가위가 다르다며 보여주기도하고 자기가 옛날에 을지로에서 날리던 이발사란 자랑에 최근엔 쉬시다 이 곳 임대료가 월15만원 밖에 안해서 소일 삼아 한다는 이야기까지. 졸 시간도 없이 이야기는 또 이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위로만 하는 이발, 이런 이발을 해 본지 언제던가. 30분이 넘어갔다. 그 동안 손님 하나가 들어오고 할아버지와 손님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손님도 또 있는데 전혀 서두르지 않는 할아버지. 손님도 그러려니하고 편안하게 기다렸다.

"다 끝났습니다. 머리 감으시죠"

그렇게 이발을하고 이발비 6000원을 지불했다. 집에돌아와 다시 거울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머리 숱이 이발 전 보다 많아 보였다. 딸들도 이발 잘 되었다며 멋있단다. 마누라는 머리에 뭐했냐며 흰머리도 적어 보인단다. 이럴 수가!

우연히 가본 이웃 동네 이발소엔 마법같은 이발 기술을 가진 할아버지가 지금도 손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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