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하루 2008. 3. 6. 17:45

주인 찾은 사진기

2005년에 이런 글을 썼더군요

지난주에 디지탈 카메라를 샀습니다. 사진을 하는 (얘네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가 요즘 제가 사는게 영 아니다 싶었는지 사진을 권하더군요. 금방 사러 나서질 않으니 하루는 저를 끌고 남대문 수입상가에 가서 제 멋대로 이거저거 정해서 안기더군요. 그래서 요즘 카메라를 배웁니다. 혼자서 책도보고 인터넷으로 보고 . 사진기 구조와 사용 설명서에 매달려 있습니다. 무조건 찍으라는 친구 말은 뒷전입니다. 준비가 되어야 움직이는 건 직업성향이다라고 우깁니다. 그리고 이 사진기 autofocus만 되는 게 아니고 수동도 되고 렌즈도 갈아 끼울수 있습니다. "DSLR" 그렇게들 부르더군요. 고급 사양도 아닌데 백만원 조금 더 줬습니다. 장난감에 돈 많이 썼다고 집사람이 눈치를 줍니다. 제 사진기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구요 실은 낡은 사진기 얘기입니다.우리집 장농 서랍 안에는 이제는 쓰지 않는 사진기가 하나있습니다. 미놀타.나이는 적어도 45세 이상. 금속성 바디에 검은 가죽을 두른 모습이 고풍스럽습니다. 렌즈는 자그마하고 온갖 조작은 모두 수동으로 해야합니다.코딱지 만한 뷰파인더에 이게 사진을 찍을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디지탈, 오토포커스 , LCD 화면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물건입니다. 한장을 찍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순간 포착, 어림도 없습니다.그런데 나에겐 어린 시절 사진이 의외로 많습니다. 흑백이지만 다양한 표정 역동적 움직임 , 여러 순간,기념일 거의 빠짐이 없습니다. 이런 사진기로 한장 한장 찍어낸 순간들. 참 옛날 분들 대단하십니다. 사진하는 제 친구가 수집하겠다며 팔랍니다. 못 팝니다. 이 사진기의 주인은 제 아버지입니다.그분이 떠나신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그래서 내가 보관은 하고 있지만 아직도 주인은 아버지입니다. 난 자식을 사진에 담기위해 순간을 찾고, 기다려서그 순간을 잡아내는. 그런 공을 들일 정성도 자신도 없어 이 사진기의 주인되길 미루고있기 때문입니다.

20008년 3월


나는 언젠가 당연히 이 사진기의 주인이 될거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얼마전 누나 가족이 미국에서 왔습니다. 제 사진기를 자랑하다 아버지의 사진기를 꺼냈습니다. 누나가 갖고 싶어 하더군요.

아버지 손길이 남아있고 뷰파인더 너머에는 아버지의 눈길이 있을듯한 물건이니 당연하겠죠. 아마도 이 카메라는 누나를

찍기위해 아버지께서 사셨을겁니다.사실은 저도 갖고 싶습니다.

근데 누나는 이 사진기를 나중에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했습니다. 외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어떤 끈 같은것, 뿌리라고도

할수 있는 걸 상징하는 물건이 될것 같다며 말입니다. 한국에서 외할아버지께서 쓰시던 카메라를 나중에 미국에 있는 외 손

자가 소중히 이어간다. 그거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줬습니다. 아니 아버지 카메라를 전해 주었습니다. 조카는

'괜찮다면 자기가 지금부터 간직하고 싶다'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이 사진기는 지금 Washington.D.C에 가 있습니다..

아버지 ! 좋으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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