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하루 2004. 9. 23. 11:35

아버지



참으로 오랫만에 연필을 만지작거리다 칼을 들어 깎기 시작했다.

육각의 면을 따라 나무를 조각하듯 돌려 깎으니

살폿한 나무 향이 피어난다.

어릴적 향나무 어쩌구하는 연필의 이름이 떠올랐다.

요즘이야 연필심만 갈아넣고 톡톡 눌러대면 일정한 굵기의 글씨를

쓸 수 있지만 어릴적 우리공책은 가는 글씨에서 점차 굵어졌다가

다시 가늘어지는 글씨의 흐름이 있었다.

혼자서 연필을 깎지 못하던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나의 연필은 거의 아버지께서 깎아주시곤 했다.

체구가 자그마하셨던 아버지께서 등을 동그랗게 오무리시고

연필을 깎아주시면 그 모양이 어찌 그리 반듯했던지.....

학년이 높아진 후에도 시험 전 날이면 어느새 연필을 깎아서,

나의 기억으론 5자루 정도였는데, 필통에 가지런히 넣어두셨었다.

이제 돌이켜 보면 당신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시며 아들의

연필을 깎아 주셨을까.

아비가 된 지금에야 어렴풋이 그 마음을 느끼며 코 끝이

찡하고 목이 메어온다.

이제 내 곁에서 멀리 떠나신 아버지, 그 분의 몸가짐 만큼

이나 반듯하게 깎여졌던 연필을 가슴에 새기며 내 아이의

필통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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